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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이용한 기업 정보 서비스 펌글

 


다우 존스사: 인터넷을 이용한 기업 정보 서비스


 


Gregory P. Gerdy (다우존스사 기업 상품부 이사)


 


인터넷이 상업화됨에 따라 각 기업은 이를 이용하여 번영을 꿈꾸는 흥미로운 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새로운 산업군이 형성되면서 기존 산업군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도전요소에 직면하고 있다. 중요한 기간 산업과 출판 산업 등은 TV 출현 이래 다시 볼 수 없는 도전과 기회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웹진 제작업체와 같이 다우존스사도 인터넷에 아주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다우존스사가 이 새로운 시기에 도전과 기회 창출을 목표로 내보였던 것은 Ask Dow Jones(ADJ)였는데, 이는 써드파티가 제공한 특정한 날의 중요 비즈니스 뉴스에 다우존스사가 제공하는 독점적인 내용을 결합시킨 비즈니스 정보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다.


ADJ는 WWW와 WAIS(Wide Area Information Server) 기술을 기반으로 구축되었다. 다우존스사와 계약을 체결한 WAIS Inc.는 초기 운영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하고 ADJ 구축에 착수하였다. 이장에서는 다우존스사와 다우존스사의 ADJ 전자 퍼블리싱 사업 계획에 대한 간략한 배경을 설명하고, 서비스 개발과 출판 산업에서 직면했던 주요 이슈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 다우존스사와 전자 퍼블리싱


 


다우존스사는 100년 이상 비즈니스와 금융 정보를 제공해온 업체이다. 다우존스사의 이 짧은 소개와 함께 전자 퍼블리싱이라는 말로 다우존스사가 인터넷상에서 겪었던 엄청난 변화를 설명하기는 충분할 것이다. 다우존스사는 기존에 인쇄 출판업체로서 성공했다는 인식보다 전자 퍼블리싱업체로서 성공하기 위해 몇년 동안 노력해왔다.


▶ Dow Jones News/Retrieval


월스트리트의 세계는 그 자체의 리듬과 욕구와 특유의 표현법을 가지고 있다. 1977년에 다우존스사는 Dow Jones News/Retrieval이라는 이름으로 메인시장을 다루는 전자 퍼블리싱업체로 발돋움하였다. Dow Jones News/Retrieval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모뎀을 사용하여 원격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는 기업가에게 이머징 마켓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 서비스 그룹의 일환이 되었다.


News/Retrieval은 다우존스 뉴스와 증권 산업의 뉴스와이어 기록들을 다루었다. 다우존스 뉴스는 전용 단말기나 소형 텔레 프린터 장치 등 기타 시스템을 사용하여 개인 사용자들이 접속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로 구축되었다. 초기 사용은 기업내 자료실과 개인 이용자들이 주종을 이루었다. News/Retrieval 사업 착수 이후 중요한 사건은 또한 주식 거래 가격이 추가 제공되었다는 것이다.


처음 개인용 컴퓨터가 출시되었을 때 이것은 굉장한 붐을 일으켰다. 초기에 News/Retrieval에서 제공하는 뉴스와 주식 거래 가격은 애플사의 Apple II에서 볼 수 있었고 이로 인해 기업은 전자 시대의 굉장한 변화를 맛보게 된 것이다. IBM 개인용 컴퓨터가 몇년 후 출시되었고 기업과 개인 투자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게 되었다.


News/Retrieval이 데이터베이스를 추가할 때마다 새로운 고객이 늘어났다. 이때 정보 서비스 그룹은 '월 스트리트 저널' 전문(全文)을 수록한 데이터베이스를 개발하고 있었다. 출판 인쇄업계의 인수합병이 여기저기에서 떠들썩하던 당시에 흔들리지 않고 천천히 변화를 추구하면서 다우존스사는 개발 데이터베이스를 1984년에 발표하게 된다. 사용자는 주로 기업자료실 근무자들이었는데 그당시로선 최신이었던 복잡한 검색 프로토콜과 비싼 서비스에 예산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1980년대에 News/Retrieval은 사업자들에게 예측 정보나 경쟁사 추적정보 및 건전한 투자 결정에 대한 정보를 수록한 많은 데이터베이스를 추가 운영하면서 시장에서 점점 떠오르는 총아로 부상하게 되었다. 그후 ADJ에 이르기까지의 10년 동안 두가지를 더 개발하게 된다. 첫번째는 다우퀘스트(DowQuest)의 개발로서 이는 자연어 검색 시스템이며 두번째로 다우비전(DowVision)으로서 서비스에 대한 비즈니스 계획의 형성이었다.


▶ DowQuest


1987년에 매사추세츠 캠브리지의 작은 기업이었던 다우존스와 Thinking Machines사는 주로 병렬 처리 수퍼 컴퓨터인 커넥션 머신을 이용한 공동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커넥션 머신은 정부와 국방부에서 사용되고 있는 때였다. Thinking Machines사에 있어 다우존스사와 함께 상업용 시장에 나선다는 것은 고객 기반을 다양화하면서 기업 고객을 확장할 수 있는 첫번째 단계로 여겨졌다. 다우존스사에 있어서 기업 도서관과 사람이 사용하는 데스크탑에서 텍스트를 검색하는 엔진 개발은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다우퀘스트에 사용된 알고리즘은 The Thinking Machines사의 Brewster Kahle 등이 개발한 것을 기초로 하였다. 그들은 검색능력 피드백을 실행하였는데, 이것은 자연어 질의를 사용하여 검색 결과가 불분명한 경우 피드백이 빨리 될 수 있도록 인덱스를 한 것으로서 이 피드백 루프는 사용자가 원래 입력한 질의 그 이상을 충족시켜주기를 원하는 데이터베이스의 복잡한 질의어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부울리안 검색 전략과 복잡한 인쇄 및 디스플레이 명령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없는 반복적인 과정일 뿐이다.  다우퀘스트 업무는 궁극적으로 다우비전으로 일컬어지는 다우존스사의 주요 새 사업과 꼭 들어 맞아 돌아가고 있었다.


▶ 다우비전


다우비전은 기업을 타겟으로 한 새로운 뉴스 전달 시스템이다. 실시간 뉴스와 다우존스사와 기타 써드파티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방송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이 뉴스는 다우존스사 독점적으,로 X.25 네트워크를 통해 초고속으로 고객 컴퓨터로 직접 전송되어 전달된다. 다우비전 운영은 Automated Data Processing and Track Data 와 같은 금융 산업 벤더의 운영형태와 유사한 면이 있다. 금융산업 벤더들은 다우존스나 기타 써드파티 소스에서 뉴스를 취하여 이것을 실시간으로 브로커와 증권 시장 전문 분석가에게 제공하고 있다.


▶ WAIS 프로젝트


다우퀘스트와 다우비전의 지류로 생긴 WAIS 프로젝트는 1989년에 검색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WAIS에 대한 개념은 다우퀘스트 프로젝트를 진행한 Kahle에 의해 세워졌으며, 사용자들이 세계의 어디에서 하나의 검색 프로토콜을 이용하여 여러개의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할 수 있는 기준을 결정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다우존스와 Thinking Machines사는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기 위해 두가지 방식으로 접근하였다. 그중 하나는 애플 컴퓨터로 하여금 사용자 인터페이스 개발을 하도록 하고, 신기술 테스트에 적극적인 KPMG Peat Marwick는 이렇게 구축된 데이터베이스의 실질 수요자를 보유하도록 한 것이다.


그당시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내부 KPMG 파일과 다우퀘스트 서버 접속에 관련된 것이었는데, 500여개 이상의 비즈니스 출판물 1년치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었다. 애플사는 성능이 향상된 고객용 소프트웨어를 개발공급하였는데, WAIS 프로토콜과 로즈버드라는 암호명으로 구축되어 매킨토시 환경에서 사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니 이러한 구조는 오늘날의 인터넷 서비스를 예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WAIS 프로젝트 팀이 준비했던 다이어그램에서 박스나 선은 전세계의 수많은 형태의 파일을 포함한 서버에 연결되어 오늘날의 인터넷 초기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특히 월드와이드웹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90년 말에 프로젝트 팀은 KPMG에서 사용되었던 효율적인 프로토타입 개발에 성공했다. 이로써 가장 중요한 상업적 성공 스토리가 탄생하게 되었으며, 사람들은 다음의 성공스토리를 기대하게 되었다.


1991년 초에 4명의 관계자가 각자의 길을 떠났지만 그 프로젝트의 명성은 정보검색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여전히 중요하게 남아있으며, WAIS 프로젝트는 기술도약의 새로운 시도로 남아있다.


 


▣ ASK DOW JONES On the Web


 


Brewster Kahle가 캘리포니아의 멘로 파크에 WAIS Inc.를 설립하고, 다우존스가 뉴저지의 프린스톤에 비즈니스 인포메이션 서비스(BIS)라는 이름으로 기업을 대상으로 전자퍼블리싱에 있어 모든 분야를 합병 정리하던 1년여의 기간이 지나고 다우존스와 WAIS Inc.는 서로의 유대관계를 단단히 하고 가능성있는 프로젝트에 관한 논의에 착수하였다. 이 토론의 결과로 다우존스사가 가지고 있는 컨텐트를 WAIS사의 서버에 올리면서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Dow Jones News/Retrieval이 이미 인터넷 서비스에 대한 모든 대안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아이디어는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첫째, 기존의 사업자들과 경쟁없이 인터넷상에서 실험할 수 있었다. BIS는 1993년 느즈막히 해커와 대학의 영역에서 다루는 것으로 간주되면서 한판 승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두번째로, WAIS Inc.는 인터넷에 진출한 유력한 업체였고, 또한 입증된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다. WAIS 사와 함께 작업함으로써 다우존스사는 이미 준비된 상태에서 새로운 스태프와 내부 프로젝트를 만들지 않고 인터넷 퍼블리싱에 관련한 것을 할 수 있었다. 결국 양사가 서로에 대해 알아가면서 서로에 대한 역할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 개념에서 발표까지


ADJ 서비스는 그림 3-1에서 나타난 것처럼 운영된다. WAIS Inc의 파일서버는 데이터를 입력받아 인덱스하여 인터넷을 통한 검색이 가능하도록 WAIS 데이터베이스내에 데이터 축적이 되도록 셋업되었다. 검색은 자유어와 관계형 피드백이나 다우존스사에서 채택한 메타데이터(기업코드, 산업코드, 등)를 이용하여 검색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고객용 소프트웨어로 ADJ가 이용한 것은 고퍼, WAIS 및 모자익과 같은 인터넷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무료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였다.


고퍼는 검색 구조 데이터베이스용으로 미네소타 대학에서 개발되었는데, 내용을 서술하고 있는 폴더를 통해 접속할 수 있다. WAIS 고객 소프트웨어는 위에 언급된 것처럼 인터넷상의 모든 WAIS 서버를 검색할 수 있는 WAIS 프로토콜을 확장한 것이다. 모자익은 일리노이 대학의 국립 수퍼컴퓨터  응용 연구소(National Center for Supercomputing Applications)에서 개발되었는데 WWW, 새로운 인터넷 프로토콜을 이용하여 인터넷상의 어떤 웹 서버로든 정보의 하이퍼링킹이 가능하도록 개발된 것이다. 웹서버는 작고 단순한 내용을 개발하기에 그다지 비싼 편이 아니다. ADJ의 경우 웹 호환이 되지만 서비스를 위한 서버용 검색 소프트웨어로서 WAIS 엔진이 필요하였다.


ADJ는 월 정액제로 운영되었으며 초기에 한사람당 50달러/달 정도의 요금이 책정되었다. 인터넷이 사람들 사이에 많이 알려진 상태가 아니고 고객 확보나 통신 요금 부과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기 때문에 다우존스사가 이미 하고 있던 사업이 소수의 News/Retrieval과 다우비전 고객에 영향을 미치더라도, 가격/가치에 비한 제품의 영향력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이러저러한 분석이 이루어지는 대신 본능적으로 이 서비스가 다우존스 BIS 제품 이용 고객에게만 한정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컨설턴트, 소규모 개인업체의 전문가, 최상의 정보 욕구는 있지만 아직 정보서비스를 이용해보지 않은 스몰 비즈니스 운영자 등이 타겟 고객층으로 부상되었다.


내부 요구로 인해 1994년 1월까지 계약 체결이 연기되었으나, ADJ 프로토타입은 '94년 캘리포니아 인디안웰즈 시연회에서 소개되었다. 이 일로 인해 컴퓨터, 소프트웨어, 정보 산업 분야에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기에 이르렀다. 히트쇼는 아니었지만 컨설턴트와 기타 자가 운영 소규모업체의 잠재 고객에게 잘 전달이 되어 상품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 주요 이슈


1994년 말이 되자 프로젝트에 관련하여 수많은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새로운 벤처기업에서 그 문제를 설명하는 것이 가장 도전적이고, 당황스럽고, 고무적인 경험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에는 예외가 없었던 것이다.



    ☞ 소프트웨어 클라이언트: 1994년 4분기 말쯤에 가장 뛰어난 웹브라우저였던 모자익이 고객 접속 전쟁에서 완연한 승자임이 증명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해 초에 비해 WWW 서버의 숫자가 매주 5-10% 정도씩 증가세를 보였으며 1995년 거의 20%를 기록하였다. 고퍼 클라이언트 역시 이용중이었지만 모자익이 성장함에 따라 기존의 고퍼클라이언트 사용자수가 뒤쳐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WAIS 클라이언트 기술이 모자익과 웹처럼 우선도가 낮은 프로그램으로 밀려났다.


    ☞ 타겟마켓: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술이 종종 시장을 유도하기도 한다. ADJ 프로젝트는 확실히 기술이 우선되어 시장이 유도된 경우이지만 기존의 고객이 제품을 유도한 사례이기도 하다. 인터넷 테크놀러지는 해를 거듭하여 프로토콜과 협약이 체결되면서 발전하였다. 하지만 인터넷은 비즈니스 뉴스와 정보를 파는 시장이 아니라 상업화가 가능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조절하기 위한 잠재시장에 대한 약속에 불과한 것이었다.


    1993년 초에, 수백만명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으나, 이 통계는 인터넷으로 전자메일을 교환했던 사람만을 보고한 것이고, 그외 수많은 인터넷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했던 로밍 이용자들은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럴듯한 타겟마켓 선정을 하면서 다우존스사는 기존 고객에게 비정형적인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실지로 인터넷을 사용하는 엔드유저의 수가 매우 소수임을 발견하였다. WAIS 커뮤니티를 이용한 비정형 분석은 이에는 개발자와 인터넷에 접속했던 사람과 대화했던 사람들,데이터베이스에서 로긴을 모니터한 모든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비즈니스 엔드유저들은 대규모로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사실상, 공식적으로 1992년 말과 1993년 초에 연구 성과가 있었으며, 이 결과는 다우존스사로 하여금 "귀찮게 하지 말라"는 결론을 내리게끔 하였다. 어쨌든 신중한 예측이 행해졌고 비즈니스 엔드 유저, 소규모 개업의, 컨설턴트 등을 인터넷 기반 서비스 사용 후보 계층으로 올리게 되었다. 이 사용자들은 Dow Jones News/Retrieval을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을 것으로 간주하였다.


    1994년 초에, 위에 언급한 타겟 마켓에 대한 변화가 거의 없었다. 중요한 조사 작업도 진행되지 않았다. 모든 통계치 또한 요금부과자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신빙성이 없는 자료였다. 결국 인터넷을 두고 끓어오르던 과대 망상에 혼란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그해 말, 인터넷 시장이 실제로 존재하고, 몇백만명의 사용자들이 풀 억세스를 기록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사용자들을 특징지운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시장의 실재 잠재력을 이해할 수 있는 통찰력도 거의 없는 상태이다. 단지 맹목적으로 계기에 의존한 비행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대소기업에 관련한 벤처 사업: 일반적으로 대기업과 소기업을 움직이는 동력은 다르다. 대기업은 정형적이고, 조직적이며, 자극에 무디지만, 소기업은 비정형적이고 일반적으로 덜 조직적이며,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이것이 꼭 정석인 것은 아니다. 다우존스사의 그룹은 신속한 움직임을 실지로 보여준 기업으로 BIS는 살벌한 경쟁 환경의 세월 속에서 신속하게 대처한 사례를 보여주었다. 월스트리트저널 클래스룸 에디션을 비롯한 기타 그룹은 기업가적 운영(entrepreneurial operation) 방식으로 시장에 상품을 내놓았다.


    ADJ 벤처는 서로 상호보완을 이루면서 서로 상이한 두기업의 절묘한 조화이다. 다우존스사는 사업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으면서 전통 인쇄 방식과 전자 퍼블리싱에 경험많고 최상의 컨텐트를 보유하고 있는 대기업이다. WAIS Inc.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인터넷에 관련된 경험과 포괄적인 계약 및 검색 기술의 개척을 했던 소기업이다. 이 두기업의 제휴는 목표 달성을 위한 절묘한 보완 기술의 조화를 최상으로 보여주었다.


    ☞ Meeting Dates: 프로젝트가 1994년 여름 2단계에 접어들면서, 원래 예정일이었던 1994년 가을에 끝내기 힘들다는 결론이 나왔다.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너무 많이 생기자 프로젝트 팀원들은 원래의 목적에 부합하는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기타의 신뢰도를 조작하였다. 게다가 검색엔진을 개발하고 웹서버에 연결시키는 일이 하룻밤새에 될일이 아니었다. 업데이트가 배치형식으로 이루어지거나 업데이트 파일이 거의 없는 경우 정적 데이터베이스에서 실시간 혹은 거의 실시간 인덱싱과 업데이팅이 이루어지는 제품에서 안정성을 획득하기만 한다면 전통적인 방식보다 두배의 성과를 가져다 줄 수 있는 랜 기반의 다우비전 사업이었다. ADJ는 근무 시간 내내 수십개의 뉴스를 다룰 예정이었다.


    여름이 지나갈 때쯤 인터넷과 정보 고속도로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제기되었는데 희소식이 나쁜소식이라는 것이다. 희소식은 고객이 재미있는 기술, 상품, 서비스에 끌려 정식으로 등록하는 것이었다. 다우존스사의 고객은 결국 인터넷 접속을 통한 질문을 터뜨리기 시작하였다.인터넷은 상업용 공간으로서 매우 현실성있는 자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쁜 뉴스는 물론 이러한 경쟁력이 법적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 보안: ADJ 프로젝트로 인해 인터넷의 보안 문제가 해결되거나 다우존스사가 운영하던 기타 매체에서 오히려 더욱 안전하다는 신뢰의 홍수를 맞게 되었다. 다우존스사의 이사진은 BIS 그룹에게 인터넷 보안에 관련한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이러한 질문에 상세하고 책임있는 답변이 따르는데도 매달 저작권과 데이터베이스 침입과 같은 새로운 위반 사항이 터지거나, 유사 사건들이 뉴스 타이틀을 장식하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인터넷 보안 기술이 발달하였느데, 이는 전자 상거래가 나타나면서 필수로 떠올랐던 이슈이기도 하다. RSA 데이터 보안이나 테리사 시스템과 같은 회사는 안전거래를 보장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이 개발은 모든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에게 폐쇄 시스템에서 가능한 최상의 패리티 보안 장치를 찾는 행운을 안게 하였다.


    ☞ 지적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right): 지적 재산권은 인터넷 퍼블리싱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이것은 전자 퍼블리싱업계에 새로이 대두되는 이슈가 아니라 온라인 서비스가 시작된 이래 해년마다 제기되던 문제로서 지역 네트워크(LAN)와 기업의 e-mail 확산으로 더욱 심각해져갔다. 사용자들이 메일을 포워딩하는 방법이나 현행 저작권법하에서 행해지는 불법 복제와 유통 방식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생각의 여지가 없었다.


ADJ가 겪었던 두가지 경험은 약간의 놀라움이었다. 첫번째 경우에, 사용자가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를 뉴스그룹에 게시한 적이 있었다. 이 뉴스그룹의 관리자는 즉시 이를 다우존스사에 보낸 경우이다. 또 다른 경우는 멀티사이트 기구 지국이 다우존스사의 동의하에 볼 수 있도록 한채 해당 지역 서버상에서 오기 표현된 몇개의 저널 기사를 서버에 게시하였다. 기사의 내용이 인터넷 구석구석에서 접속하여 볼 수 있다고 생각이 미쳤을 때 다우존스사는 "중지하라 또는 그만두라"는 게시판을 보내고 사건은 즉시 다우존스사에 만족하게 해결이 되었다.